市立「日据时期群山历史馆」 是一处以人权、和平与共生为核心价值的公共文化空间,也是透过正确认识日本殖民统治下的掠夺历史,进而开创大韩民国未来历史的记忆宝库。
日据时期群山历史馆秉持「人、文物与空间相互交流」的理念,重视观众与历史之间的对话。尤其是透过自群山开港至光复期间所留下的资料与文物,与参观者建立深层沟通,这是本馆最为重视的核心价值之一。以此为基础,致力实践现代博物馆所追求的理解、共感与社会凝聚力。
日本殖民统治所造成的强制掠夺之痛,是一段必须严肃记忆的历史;重新理解这段过去,并透过反思与疗愈与未来展开对话,也是当代社会的重要课题。日据时期群山历史馆持续将殖民掠夺的伤痕,转化为人权与和平的价值,并透过记忆的搜集、研究、展示与教育活动,保存历史、见证真相,为未来留下深刻而有意义的历史记录。
동국사(東國寺)는 1909년 일본 승려 선응불관 스님에 의해 창건되어, 일제강점기 36년 동안 일본인 승려들에 의해 운영되다가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이하며 대한민국의 품으로 돌아온 뼈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사찰이다. 그리하여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 시대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우리나라에 남겨진 유일한 일본식 사찰로, 대웅전과 요사채가 실내 복도로 이어진 것이 특징이다. 화려한 단청이 있는 우리나라 사찰과는 달리, 아무런 장식이 없는 처마와 대웅전 외벽의 많은 창문이 일본식 사찰의 특징을 나타낸다.조계종 제24교구인 고창 선운사의 말사로, 동국사의 대웅전은 2003년 7월 국가지정 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동국사의 본래 이름은 금강선사였다. 금강선사는 1909년 일본인 승려 내전불관이 군산에 포교소를 개설하면서 창건한 조동종 사찰이다.
일본 불교는 1877년 부산 개항과 함께 일본 정부의 요청에 의해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가장 먼저 정토진종 대곡파가 포교를 개시하였으며, 1904년 군산에도 포교소를 개설하였다. 이후 일연종이 뒤를 이었다. 결국 일본 불교가 우리나라에 진출한 까닭은 순수한 불교 포교가 목적이 아니라, 한국을 일본에 동화시키려는 일본 정부의 의지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 하겠다. 이후 조선총독부는 일본 불교를 포교하고자 1911년 6월 3일 자로 사찰령을 발령하였다. 이를 계기로 일본 불교는 전국에 별원, 출장소, 포교소 등을 건립하였다. 금강선사가 창건되기 전, 군산에는 본원사, 군산사, 안국사가 자리하고 있었다. 금강사를 창건한 내전불관은 1909년 당시 77세의 고령으로 군산 지역을 순회하던 중, 군산 일조통에 있던 집을 빌려 포교소를 개설하였다. 1913년 7월 현재의 자리로 옮겨 지금의 동국사를 신축하였다
建于日帝强占期的寺庙,东国寺
东国寺是1909年由日本僧侣善应佛观师父所建,日帝强占期36年在日人僧侣们的管理下营运,直到1945年8月15日解放后回到大韩民国的怀抱,是带有历史教训的寺庙。经历日帝殖民与大韩帝国直到现在,是韩国现存唯一的日本式寺庙,连接大雄殿与寮舍斋的室内走廊是其特征。与韩国有着华丽丹青的屋簷完全不同,毫无装饰的屋簷与大雄殿外墙上许多的窗户都显露出日式色彩。作为曹溪宗第24教区的高敞禅云寺的分寺,东国寺的大雄殿于2003年7月被指定为国家指定登录文化财第64号。
东国寺原本的名字是锦江禅寺,锦江禅寺是1909年日本僧侣内田佛观在群山建立佈道所后所创建的曹洞宗寺庙。日本佛教是1877年釜山开港后透过日本政府的邀请而传入,最初是由淨土真宗大谷派开始传扬佛教,1904年在群山建立佈道所后,日莲宗在其后传入。事实上日本佛教传入韩国的理由并非单纯的佛教佈道而已,只是更明显的反映出日本政府想将韩国同化的意图,之后朝鲜总督府为了发扬日本佛教而在1911年6月3日发布了寺刹令。
以此为契机,日本佛教在韩国全国广设别院、出场所、寺道所等。在锦江禅寺创建之前,群山有本愿寺、群山寺、安国寺。创建锦江寺的的内田佛观在1909年当时,以77岁的高龄在群山地区寺庙传教,并在群山一条通借了房子作为寺道所,1913年7月时移到现在的位置新建了现在的东国寺。
东国寺的意义
东国寺是日帝强占期建造的寺庙,日帝强占期所建的日式寺庙现在所剩无几,这是唯一留存下来的地方。东国寺大雄殿于2003年指定为登录文化财帝64号。
군산의 부윤(시장)이 생활하던 곳으로 당시 돈방석에 앉으려면 군산 부윤을 해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군산 부윤은 선망의 자리였다고 한다. 군산시 월명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상 2층에 대지면적 1,023㎡, 건축면적 200.3㎡ 넓이의 중간 규모 정도의 1930년대 건축한 일본 고 민가 형태의 민간주택용도 근대건축물이다. 정원에는 석등 등이 있어 일식 정원의 형태를 볼 수 있고 내부에는 목조 계단을 통하여 2층의 방들과 연결되어 있으며 방에는 오시이레와 도코노마가 설치되어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부윤 관사, 해방 후에는 1990년대 초까지 시장 관사로 사용되어 왔다. 1970년~1980년대까지만 해도 군산에는 시청을 비롯한 군청, 법원, 경찰서, 형무소, 세무서, 초등학교에 이르기까지 일제강점기에 지은 관공서 관사가 많이 남아 있었다. 관사는 오랜 기간 사용되지 않고 방치되었다가 1996년 개·보수를 거쳐 한때 일반음식점으로 사용돼 오던 중 지난 2014년 말쯤에 음식점이 이전하면서 방치돼 있다.
군산시 우체통거리는 2016년 도시재생사업으로 추진된 주민공모사업에 우체국 주변 주민들로 구성된 도란도란 공동체가 참여하면서 주민들이 직접 폐 우체통을 손질하고 그림을 그려 상가 앞에 설치하면서 조성되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주민들은 2017년 군산 우체통거리 경관협정운영회를 결성해 경관협정을 체결했고,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노력으로 2018 제1회 손 편지 축제를 개최하며 평범했던 거리는 우체통거리라는 도로명까지 얻으며 활기를 되찾았다. 또한, 우리 동네 살리기의 모범 사례로 자리매김했다. 우체통거리에는 캐릭터 우체통과 특색 있는 경관조명, 아트월 등 조형물이 조성되어 있어 거리를 찾은 시민들과 관광객들에게 즐거운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버려진 폐 우체통을 활용하지는 작은 아이디어를 시작으로 우체통거리를 만들고 손 편지 축제까지 여는 관광명소 마을이 된 것이다.
신흥동은 1930~40년대 무렵부터 일본인들이 집을 짓고 살게 되면서 주거지가 형성되기 시작했고 6·25전쟁 시기 피란민이 지금의 해망동, 신흥동 등지에 터를 잡고 살게 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이때 바위 위에 판자집을 다닥다닥 대어 집을 지었고 세월이 흘러 이곳은 초가지붕 가득한 동네가 되었는데, 산비탈을 의미하는 전라도 방언인 ‘말랭이’에 마을을 형성하였다 하여 사람들이 말랭이마을이라 부르게 되었다.
현재는 인구 유출로 인한 원도심화가 진행되고 있으나 2014년 전라북도 대표 관광지 육성사업으로 예술인 레지던스 9동과 전시관 8동이 조성되어 50여 세대의 주민과 7팀의 예술가들이 오순도순 함께 사는 마을이다. 마을 곳곳에는 벽화와 포토존, 소리 공간, 김수미 배우 집, 말랭이마을 추억 전시관, 양조장이 있다. 또한,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에는 동네 골목 잔치가 열린다.
전시관을 지나 비탈진 골목길을 따라 월명산에 오르면 금강하구가 서해와 만나는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곳으로 해 질 녘 노을과 야간경관 명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