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야 역사테마관광지는 대가야의 도읍지였고, 우리나라 최초의 토기와 철기, 가야금 문화를 찬란하게 꽃피웠던 대가야의 역사를 테마로 하여 조성되는 관광지이다. 고대문화를 첨단 시설로 보고 느끼고, 체험할 수 있도록 영상관, 유물 및 신비한 나라 대가야 체험관, 대가야 탐방 숲길 등의 볼거리가 있다. 가야는 기원 전후부터 대가야가 신라에 흡수된 562년까지 존재했던 연맹체로서 우수한 철기 문화를 바탕으로 독자적인 대외 교류를 추진하였으며, 가야금과 같은 훌륭한 문화유산을 남겼다. 고령군은 가야 문화권에 속해있었으며, 더 나아가 대가야의 중심 도읍지로서 가야 시대의 유물과 유적이 많이 출토 되고 있다. 대가야의 도읍지로서 가야 문화의 중심 지주적 역할을 하였고, 나아가 가야 문화제 행사 교류 및 학술적, 사료적 가치 가야 문화권의 재정비, 가야 문화의 복원 및 전파를 하고자 대가야의 중심 도읍 고령군에 대가야 역사 테마 관광지를 설립하게 되었다.
2005년 조성된 고령 생활체육공원은 군민의 생활체육 보급과 확대, 휴식과 레저 그리고 고령군민의 단합의 장으로 사용되는 곳이다. 천연잔디 축구장, 인조잔디 축구장, 족구장 2면, 야구장 2면, 농구장, 테니스장, 씨름장, 양궁, 풋살장, 육상 트랙으로 구성된 종합스포츠 시설이다. 농구장과 트랙을 제외한 시설물은 고령군청에 사전 전화예약해야 하며, 야외 조명 설치로 주간은 물론 야간 경기도 진행 가능하다.
주변 관광지로는 고령 어북실이 있다. 이곳은 봄에는 유채꽃, 가을에는 코스모스와 핑크 물리를 조성하여 매년 축제가 열리는 곳이다.
고령 지산동 고분군은 1906년 처음 발굴조사되어 지금까지 크고 작은 700 여기의 고분이 발굴된 사적으로, 고분은 외형상으로는 모두 원형봉토분이며, 봉토의 규모에 따라 대형분, 중형분, 소형분으로 구별한다. 대형분은 주로 능선 상부에, 중형분은 능선 중간 이하에 군집하고 있고, 소형분은 능선 아래위 구분 없이 대형분과 중형분 주위에서 혹은 그 밑에서 발견되고 있다. 고분군은 내부 구조에 의해 돌널무덤, 돌덧널무덤, 돌방무덤으로 크게 분류되어 있다. 주로 4∼6세기경에 축조된 대가야 지배계층의 무덤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고령지역이 대가야국의 중심지였고 대가야읍을 병풍처럼 감싸는 산 위에는 대가야시대의 주산성이 능선에서 고분군이 발굴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발굴조사된 대가야 고분군은 2023년 유산적 가치가 높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그리고 이곳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발굴된 순장묘 왕릉인 지산동 44호와 45호 무덤을 비롯하여 주변에 왕족과 귀족들의 무덤이라고 생각되는 크고 작은 고분들에서는 대가야의 독특한 토기와 철기, 말갖춤을 비롯하여 왕이 쓰던 금동관과 금귀걸이 등 화려한 장신구가 많이 출토되었다. 인근 왕릉전시관과 대가야박물관에는 지산동에서 출토된 대가야 유물과 고분의 내부가 재현이 되어 있어 그 모습을 자세히 알 수 있으며, 지산동 고분 30호를 직접 볼 수 있다.
지산리 당간지주는 1963년 1월 21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지산동 민가 안에 있는데, 그 일대가 부락으로 변하여 옛 절터를 찾아볼 수 없으나, 원위치에 원상태로 동서로 마주보고 있는 것을 미루어 당시 이 일대가 대사찰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외면의 모서리를 죽이고 종문를 조각하여 매우 장식적이고 화려한 의장 수법을 보이고 있다. 지주의 정상부는 뾰족하고 바깥으로 내려오면서 3단의 굴곡을 활 모양의 선으로 처리하였으며, 지주의 안쪽에는 간공 두 개가 있는데 이들은 장방형의 형태로 구멍을 뚫어 간을 끼우도록 하였다. 지산동 당간지주는 상·하부의 크기가 거의 같아서 약간 둔중한 인상을 주지만 지주의 바깥둘레 각 면의 조각장식 수법으로 보아 가작(佳作)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전체적으로 화려하고 단아한 조각이나 솜씨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조각기법과 다듬은 돌 등을 보아 통일신라시대 중기에 건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령향교는 성현에 대한 제사 및 유학 교육을 위해 설립된 국립교육기관으로 대가야읍 중심부인 연조리 성지 내에 자리 잡고 있다. 1413년(태종 13) 주산 아래에 처음 건립되었고 임진왜란 때 불에 타자 관음사 뒤편에 중건하였다. 1701년(숙종 27)에 현감 구문유가 현 위치로 이건 하였고, 1819년(순조 19) 현감 권증이가 증수하였다. 이곳은 대가야시대에는 궁성, 통일신라에서 고려시대에는 물산사라는 사찰, 조선시대에는 향교가 건립된 고령에서 가장 유서 깊은 역사의 현장이다. 전학후묘 형식의 향교로 주산 기슭에 동남향으로 위치하고 있다. 2단으로 조성된 대지 앞쪽의 강학공간에는 외삼문과 명륜당을 두고, 뒤쪽의 제향공간에는 내삼문과 대성전을 일직선상에 배치하였다. 대성전 좌우에는 동무·서무, 제향공간의 측면에는 빈흥재가 있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 크기의 맞배지붕으로 구조는 5량가의 초익공이며, 기단은 화강성 판석으로 쌓았다.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2.5칸의 규모로 중앙의 3칸 대청 좌우에 2통칸 온돌방을 들인 중당협실형이다. 명륜당의 구조는 5량가의 무익공집으로 앞쪽에는 길게 툇마루를 시설했다. 대성전 좌우에 모로 배치된 동·서무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ㅡ자형 맞배집이다. 고령향교는 18세기 이후 건립된 경북 지방 향교건축의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고령의 서쪽 주산에 쌓은 가야의 산성이며, 이산성(耳山城)이라고도 한다. 산성의 남쪽 산등성이에는 대가야 무덤들이 분포되어 있어 산성과의 연관성을 보여주고 있다.
산의 가장 높은 곳과 동쪽의 능선을 따라 둥글게 흙으로 쌓은 내성과, 내성의 동쪽과 서쪽 끝에서 시작하여 타원형으로 돌을 쌓은 둘레 약 700m의 외성으로 된 2중 성벽을 가지고 있다. 성벽은 대부분 무너졌으나, 계곡 쪽으로는 견고하게 쌓은 성벽이 남아 있다. 현재 외성은 대나무숲이 우거져 있어 먼 곳에서 전체 윤곽을 파악하기 힘들며, 성 안에 우물터와 건물터로 보이는 곳이 남아 있다. 외성의 서남쪽에 연결된 봉우리에는 또 하나의 작은 성이 딸려 있다.
성 안에서는 주변 무덤에서 출토되는 각종 가야토기 조각과 통일신라·고려·조선시대의 유물이 출토되어 성이 오랫동안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산성은 옛 가야국의 중심적인 성터로 유서 깊은 면모를 보여주며, 당시의 성곽 축조 방식 및 구조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