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종죽림은 고창읍성 안쪽에 있는 대나무숲이다. 해외품종인 대나무는 높이 20m까지 자라며 일반 대나무보다 통이 크고 단단하다. 이곳은 영화 등 다양한 영화 촬영지로도 많이 등장한 곳이다. 야간에는 맹종죽림 아트쇼가 펼쳐지는데 대나무숲 안에 작은 불빛들이 빛나며 형형 색색의 빛으로 가득 차있는 모습이 마치 반딧불이 떠다니는 듯하며 분위기가 좋아 나들이 장소로 적합하다.
조선시대 고창현의 읍성으로서 장성 입암산성과 함께 호남 내륙을 방어하는 전초 기지의 역할을 하였다.
고창읍성은 세 번의 전투가 이루어 졌으며, 첫 번째는 정유재란, 두 번째는 동학농민혁명, 세 번째는 6.25사변 때라고 전해지고 있다. 동학농민혁명 당시 정읍, 흥덕을 연달아 점령한 농민군은 고창으로 이동하였다. 고창을 점령한 농민군은 고창읍성 내의 옥문(獄門)을 열어 죄수를 풀어주고, 읍성 앞에 살며 부정축재를 일삼았던 은대정의 집을 불태웠다.
전봉준은 농민군들에게 엄하게 규율을 지켜 무고한 백성에게 폐단을 끼치지 못하게 하였고, 또 애매하게 잡힌 죄수를 풀어주고 주린 사람들에게 곡식을 나누어 주었다, 농민군이 고창읍성을 점령하고 동헌을 파괴한 뒤 인부(印符)를 빼앗으려 할 때 고창현감은 도주해 버렸다고 한다. 조선 단종 원년(1453)에 축성된 고창읍성은 호남내륙을 방어하는 전초기지로 빼어난 자연경관과 부분적으로 복원된 관아건물은 학습교육의 장소로 많은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출처 : 고창군청)
高敞邑城建于1453年,是百姓们亲自堆砌建造的自然城池,城内有复原的朝鲜(1392~1910)时代的官衙建筑。在此不仅可看到韩国古代的传统城郭,漫步周围,还能欣赏到美丽的自然景致。
고창군 전통예술체험마을은 유네스코 세계유산도시 고창의 문화유산과 전통 예술을 보전 및 전승하며, 군민과 관광객들에게 살아있는 전통문화 체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조성된 전통 예술 체험 공간이다. 고창 읍성 진서루(서문) 옆에 위치한 이곳은 전통 한옥 6동과 초가 1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통자기 명인, 전북 무형 문화재 자수장, 천연 염색 명장, 동리 문화사업회의 인류 무형 문화유산 판소리 등 고창의 명인·명장들과 함께하는 도예,공예,천연 염색 등 다양한 체험이 가능하다. 또한 전시와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온 가족이 함께 전통문화의 깊이와 아름다움을 직접 체험하며 평생 간직할 소중한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고창의 대표적인 문화관광명소이다.
신재효 고택은 판소리 이론가이자 판소리를 집대성한 신재효(1812~1884)가 살던 집으로, 철종 1년(1850)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광무 3년(1899)에 그의 아들이 고쳐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래는 소박한 초가 사랑채로,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 전까지 고창 경찰서의 부속 건물로 사용되었으며, 이후 국가가 관리하며 옛 모습을 복원했다. 건물은 앞면 6칸, 옆면 2칸의 ‘一’ 자형 평면에 초가지붕 구조를 갖추고 있다. 내부는 부엌 1칸, 방 2칸, 대청 1칸, 통합된 방 1칸으로 구성되며, 부엌을 제외한 앞면 5칸에는 반칸 툇마루가 설치되어 있다. 부엌과 방 사이의 쌍여닫이 출입문과 대청 양쪽 방에 문이 없는 점은 독특한 구조로, 신재효의 생가로서 역사적 가치가 크다.
这里是集板索里艺术之大成,给后世留下卓越文化遗产的申在孝先生(1812~1884)的古宅。古宅正后方有板索里博物馆,桐里国乐堂(桐里为申在孝先生的号)和牟阳城。被指定为重要民俗资料第39号的申在孝古宅于1850年左右建成,现在还有正面5间,侧面2间规模的舍廊和梧桐树,水井等遗迹。
得到板索里理论家,演奏家以及伟大的指挥家称号的申在孝于1812年作为独生子,出生在一个1男3女的家庭里。申在孝起初并非板索里艺人,他在继承了家里的财富并使家境更加繁荣兴旺之后,把毕生的全部精力倾注在了板索里之上。
申在孝的古宅在1979年进行了复原和清理工作。为缅怀申在孝而在古宅后方设立了桐里国乐堂,由高敞郡运营管理。围绕着古宅周围走一圈的话,就会听到附近国乐堂里板索里的旋律在耳边回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