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여주시 여행 코스 역사의 흔적을 찾아 떠나는 여주 탐방 · 일정 기타 · 거리 31.4km · 방문지 4곳 · 주요 장소 신륵사, 여주박물관, 여주 영릉과 영릉

여주는 대략 한반도의 중앙부에 해당되고 동쪽은 강원도 원주와 충청북도 충주, 남서쪽은 이천, 서쪽은 광주, 북쪽은 양평군과 접한다.
역사의 흔적을 찾아 떠나는 여주탐방, 고달사가 있던 사찰터에서 부터 신륵사, 여주박물관, 세종대왕릉, 명성황후 생가 까지 이르는 여주 역사탐방, 역사의 흔적을 찾아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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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륵사는 봉미산 기슭에 위치한 여주의 대표적인 사찰이다. 오랜 역사와 웅장한 규모,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의 말사이자 경기도 전통사찰로 지정되었다. 일반적으로 사찰은 산속에 짓는 경우가 많은데 보기 드물게 남한강이 바라보이는 강변에 세워졌다. 신라 진평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나 확실한 근거는 없다. 고려 말기 나옹선사가 머물렀던 곳으로 유명하며 200여 칸에 달하는 대사찰이었다고 한다. 조선 성종 3년(1472)에는 세종대왕릉인 영릉의 원찰로 삼아 보은사[報恩寺]라고 불렀다가 원찰로서의 의미가 약해진 뒤 다시 신륵사라는 이름으로 돌아왔다. 벽돌로 쌓은 다층전탑이 있어 벽절로 불리기도 했다. 여주IC, 서여주IC에서 차량으로 약 13분 소요된다. 신륵사 주변은 국민관광지로 개발되어 인근에 맛집이 많고 국내 최대 규모의 도자기 전문 쇼핑몰이 있는 여주도자세상, 황포돛배 유람선 등과도 가깝다.
1997년 5월 여주시에서 개관하였으며, 신륵사관광지 안에 조성되었다. 여주박물관은 전시, 연구, 교육을 위한 귀중한 문화재를 확보하고, 이의 보존과 전승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박물관은 전시실 2실과 시청각실, 사무실, 수장고, 야외공연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요 전시품으로는 여주목읍지, 여주향교중수 기사 등 고서적과 여주와 관련된 인물들의 서간문·교지·칙령·전문 등의 고문서류와 토기·도자기·민속유물 등을 들 수 있다. 또한 흔암리선사주거지 디오라마, 매룡리 고분군 석실묘 모형, 쌍룡거줄다리기 디오라마, 신륵사 모형, 명성왕후 생가 모형 등 여러 종류의 디오라마와 모형을 전시하고 있다. 이외에 여주박물관에서는 여주의 역사와 문화유적에 관한 책자를 발간하고, 소장 유물 및 관내 문화재의 디지털 화상 작업, 공무원의 관내 문화유적 탐방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영릉(英陵)은 조선 4대 세종과 소헌왕후 심씨의 능이다. 조선왕릉 중 최초로 같은 봉분에 왕과 왕비를 같이 모신 합장릉의 형식으로 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에 세종, 오른쪽에 소헌왕후를 모셨다. 원래 영릉은 1446년 소헌왕후가 먼저 세상을 떠나자 현 서울 헌릉과 인릉 경내 인릉 자리에 조성되었고, 4년 뒤 세종이 세상을 떠나자 영릉에 합장하였다. 그러나 영릉이 풍수상 불길하다고 하여 세조 대부터 영릉을 옮기려고 하였으나 실현되지 못하였다가 1469년에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옮기면서 옛 영릉에 있던 능침 석물과 신도비는 땅에 묻었고, 여주로 옮기면서 능침의 석물은 다시 만들었다. 영릉(寧陵)은 조선 17대 효종과 인선왕후 장씨의 능이다. 영릉은 같은 언덕에 왕과 왕비의 봉분을 위아래로 조성한 최초의 동원상하릉(同原上下陵)의 형식이다. 정자각 앞에서 능을 바라보았을 때 위에 위치한 봉분이 효종의 능이고, 아래 봉분이 인선왕후의 능이다. 이렇게 능을 위아래로 조성한 이유는 쌍릉의 형태처럼 봉분을 나란히 조성할 경우, 풍수지리상 생기가 왕성한 정혈(正穴)이 벗어나기 때문에 위아래로 배치한 것이다. 1659년 효종이 세상을 떠나자 현 구리 동구릉 내 원릉 자리에 조성되었으나, 조성 직후부터 능침 석물에 문제가 생겨 보수가 계속되자 능 안에 빗물의 피해가 있을 것을 염려하여 1673년에 옮기기로 하였다. 그러나 능을 옮길 때 방을 열어보니 물이 들어온 흔적이 발견되지는 않았다. 영릉 입구에 있는 재실은 제향을 준비하는 건물로 현재 조선왕릉의 재실 중 원형이 가장 잘 남아있다.
이 집은 조선 고종(1863~1907)의 비 명성황후가 태어나서 여덟 살 때까지 살던 집이다. 명성황후는 밍치록의 딸로 철종 2년(1851)에 태어나 열여섯 살에 왕비가 되었다. 그 뒤 고종의 정치적 동반자로 개화 정책을 주도해 나가다가 고종 32년(1895) 을미사변 때 일본인에게 살해되었다. 능은 청량리에 있었다가 1919년 고종 황제가 세상을 떠나자 경기도 남양주 홍릉에 합장되었다. 명성황후 생가는 숙종 13년(1687)에 처음 지어진 집으로, 그 당시 건물로는 안채만 남아 있다. 1996년에 안채를 수리하고 행랑채와 사랑채, 별당채 등을 지어 원래 모습을 되찾았다. 명생황후 생가 옆에 있는 집은 감고당이다. 숙종의 비인 인현왕후가 친정을 배려해 서울 안국동에 지은 건물이다. 여흥 민씨 가문의 후손인 명성황후가 여덟 살 때 서울로 올라가서 왕비로 책봉되기 전까지 살았다. 이 건물이 없어질 위기에 처하자 여주시가 2008년도에 이곳으로 이전하였다. 그 밖의 시설로는 명성황후 친필, 고종 황제의 편액 등 유물을 전시하는 명성황후 기념관과 명성황후와 관련된 공연·행사 등을 개최하는 문예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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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근처에 머물면서 밤 카페 투어를 했어요. 도시 야경과 분위기가 완벽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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