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시 중앙호수공원 카페거리는 다양한 카페와 음식점이 모여 있는 매력적인 공간이다. 이곳은 호수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다. 각기 다른 테마와 분위기를 가진 카페들이 있어 방문객들은 취향에 맞는 곳을 선택할 수 있다. 특히, 테라스 좌석이 마련된 카페에서는 호수의 경관을 즐기며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만끽할 수 있다. 또한, 카페거리 주변에는 산책로와 자전거 도로가 있어 방문객들이 산책이나 자전거 타기를 즐기기에도 좋다. 이곳은 친구, 연인, 가족과 함께 소중한 시간을 보내기에 적합한 장소로, 서산시의 새로운 핫플레이스이다.
중앙호수공원(서산)은 명림산에서 흐르는 시냇물이 모여 농업용수로 사용하던 곳으로, 2006년부터 도심의 휴식 공간으로 정비하여 2008년 9월에 중앙호수공원으로 개장하였다. 공원의 면적은 7만 1841㎡이며 호수 넓이가 4만 149㎡, 호수 주변 공원 면적이 3만 1692㎡이다.
호수에는 수호초 등 초화류와 수생 식물이 있으며, 박연꽃, 백련, 홍련, 수련 등이 호수 위를 덮어 다양한 색의 꽃을 피운다. 연꽃 주변에는 수상 식물상을 관찰할 수 있는 다리 등이 조성되어 있다. 주변 공원에는 소나무, 단풍나무 등과 유채꽃이 심어져 있으며 음악 분수, 원형 광장, 전광판, 호수 중앙 팔각정, 이벤트 문화 공연 시설, 조각 작품 전시장, 산책로, 어린이 놀이터, 주차장, 조깅 코스, 각종 운동 시설 등이 갖추어져 있다. 음악 분수는 20분간 음악과 물, 빛이 만들어 내는 30m 높이의 분수, 안개 분수 등의 분수쇼가 열린다.
성암서원은 유숙과 김홍욱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유숙(1324∼1368)은 고려 문신으로 홍건적의 난 때 공을 세워 서령군으로 봉해지고 일등공신 칭호를 받았으나, 공민왕 14년(1365) 그의 충직을 두려워하던 신돈에게 교살당하였다. 김홍욱(1602∼1654)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황해도 관찰사 등 여러 벼슬을 거친 분이다. 효종의 심기를 건드리는 발언으로 죽음에 이르렀는데 ‘언론을 가지고 살인하여 망하지 않은 나라가 있었는가’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숙종 45년(1719)에 세운 이 서원은 경종 1년(1721)에 나라에서 내린 ‘성암서원’이라는 현판을 받은 사액서원이다. 고종 8년(1871)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철폐되었다가 1924년에 다시 세웠다. 대문 격인 외삼문을 들어서면 동재와 서재가 마주 보게 배치되어 있고, 유숙과 김홍욱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 있다. 이 서원에서는 해마다 2월과 8월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객사는 조선시대의 지방 관아 건물로 고을 수령이 임금의 위패를 모시고 예를 올리는 정청과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나 외국의 사신이 머물렀던 좌우익실로 구성되어 있다.
서산객사는 본래 지금의 시청인 관아 내에 있었다. 처음 세워진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시청 내에 남아 있는 외동헌과 관아문의 기법과 같은 것으로 보아 조선 후기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위치로 이전된 것은 일제강점기의 일이다. 현재 남향으로 세워진 이 건물은 앞면 8칸, 옆면 2칸의 규모로 잘 다듬어진 화강석 기단 위에 세워졌다.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자리를 옮긴 이후 서산읍사무소, 서산농촌지도소, 서산문화원으로 사용하다가 1994년에 학계의 고증을 받아 복원, 정비하여 비로소 옛 모습을 찾고 관광지화되었다.
이곳은 서산시청과 가까우므로 원래 관아 위치에 남아있는 외동헌, 관아문도 함께 관람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주변에 서광사, 서산향교, 서산중앙호수공원 등이 있다.
서산 관아문 및 외동헌은 서산읍성 안에 있던 관아 건물이다. 1871년에 서산 군수 오병선이 다시 지은 것이다. 외동현은 서산시청 본관이 있는 곳에서 1978~1979년에 지금 자리로 옮겼고, 관아문도 1979년에 해체 복원하였다. 관아문은 서산군 외동헌의 정문으로, 앞면에는 ‘서령군문’이라고 쓴 현판이 걸려있다.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로 지은 2층짜리 문루 건물이며, 지붕 옆면이 八자 모양인 팔작지붕 건물이다. 1층은 돌기둥처럼 생긴 주춧돌 위에 둥근기둥을 올렸는데, 기둥 사이에 대문을 각각 달았다. 2층에는 마루를 깔고 난간을 둘렀다. 외동헌은 공적인 일을 처리하던 곳으로, 앞면 5칸·옆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집이다. 주위 4면에 반 칸씩 퇴칸은 두었으며, 동쪽 옆면에 돌기둥 모양의 높은 주초를 배치한 것으로 보아 원래는 누마루로 만든 것으로 보인다. 앞면 중앙에 ‘서령관(瑞寧館)’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이 유물들은 고려 말에 큰 사찰이 있어서 대사동이란 동명까지 붙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일명 대사동탑이라는 삼층석탑과 당간지주다. 현재 석탑의 총높이는 5m이며, 이중기단과 탑신과 옥개석을 갖추고 있다. 각층 탑신에는 우주가 모각되어 있으며, 옥개석은 4단 받침에 전각의 반전이 있는 개석이다. 상륜부는 남아있지 않다. 또한 이 탑과 같은 장소에 있는 당간지주는 탑과 같은 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두 지주가 마주 서 있으나, 기단석의 매몰과 유실로 상태를 확인할 수 없다. 또한 두 지주의 높이가 각기 달라, 한쪽은 3.96m이고 다른 한쪽은 3.81m이다. 정상부가 파손돼 없어져, 총높이가 동일하지 않게 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