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성당은 공주 지역 최초의 천주교 성당으로 1897년 설립됐다. 초대 신부로 프랑스 선교사 기낭이 부임했으며 1921년 제5대 주임으로 부임한 최종철 신부가 새 성당 건립을 계획해 1937년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이후 강당 ‘천사의 집’, 새 사제관과 수녀원을 완공했고, 1997년 설립 100주년을 기념해 성당 건물을 대대적으로 보수했으며 1998년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됐다. 중동성당은 전통 목조 건축에서 현대건축으로 넘어가는 시기의 고딕양식의 건축물로 평가된다. 본당의 평면은 라틴십자형, 건물 외관은 붉은 벽돌로 마감했다. 중앙 현관 꼭대기에는 높은 종탑이 있으며, 현관 출입구와 창의 윗부분은 뾰족한 아치로 장식돼 있다. 인근에 국고개 문화거리와 충남역사박물관 등 볼거리가 풍부해 당일치기 코스로 좋다.
공산성 광복루는 공주시 금성동의 공산성 중앙부 정상에 있는 조선시대의 건축물이다. 공산성 안에서 군사가 주둔하던 중군영의 문이었으나 광복 이후 광복을 기념하는 뜻으로 광복루라 불렀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의 2층 누각으로 모든 면이 개방되어 있으며, 왼쪽에는 오르내릴 수 있도록 층계를 만들어 두었다.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공산성 중에서 남동부에 위치해 있으며 가장 높은 정상부인 해발 112.4m에 있어 임류각, 영동루를 거쳐 약간의 등산을 거쳐야 올라갈 수 있다.
공산성 광복루는 웅진로, 왕릉로 등을 통해 접근할 수 있으며 대중교통은 공주 시내버스 정류장을 거치는 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주변에는 공산성 외에 은개골역사공원, 산성시장 등의 관광지가 있다.
명국삼장비는 충남 공주시 공산성 공북루 아래에 위치한 비석이다. 이 비석은 정유재란 이듬해인 1598년(선조 31) 가을, 공주에 주둔하면서 왜군으로부터 방어해 준 명나라의 3장수 제독 이공, 위관 임제, 유격장 남방위의 업적을 기린 사은 송덕비이다. 본래는 공주 금강변 남안에 세워졌던 것을 공산성으로 옮겨왔었는데,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일부 글자를 훼손하고 공주읍사무소 뒤뜰에 매립하였던 것을 해방 후 다시 이곳으로 이전하였다. 총 3개의 비석으로 되어 있으며 내용은 "명나라의 3장수는 정유년 이듬해인 선조 31년 가을, 공주에 이르러 군기를 엄히 다스리는 한편 주민들을 정성껏 보살펴, 공주민은 왜구의 위협하에서도 안전할 수 있었고 임진년에 비로소 생업에 종사할 수 있었다."라고 되어 있다. 주변에는 공산성 외에 무령왕릉, 송산리고분군, 공주산성시장, 은개골역사공원 등이 있다.
공산성 쌍수정은 공주시 금성동의 공산성 서부 고지에 있는 조선시대의 건축물이다. 이 정자는 조선 영조 10년(1734)에 처음 세웠다. 인조가 이괄이 일으킨 반란(1624)을 피하여 공주로 잠시 피난 왔던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라고 한다. 이후 여러 차례 보수되어 오다 1970년에 전체적으로 해체하여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쌍수정은 공산성 정문인 금서루와 쪽문인 진남루 사이에 있어 접근하기 용이한 편이며, 바로 밑에는 백제 추정왕궁지와 쌍수정 사적비가 있다.
공산성 쌍수정은 웅진로, 왕릉로 등을 통해 접근할 수 있으며 대중교통은 공주 시내버스 정류장을 거치는 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인근 관광지로는 공산성 외에 은개골역사공원, 산성시장 등의 관광지가 있다.
쌍수정사적비는 공주 공산성 진남루 서쪽에 위치한 비석이다. 조선 인조 2년(1624) 왕이 이괄의 난을 피해 공주에 머물렀던 사실을 기록한 비석으로 숙종 34년(1708)에 건립됐다. 이괄의 난과 인조의 피난에 대한 내력을 쓰고 공산성에 머무른 10일 동안의 행적, 그리고 공산성에 대한 내용을 적았다. 비신은 방형의 오석이며 너비와 두께는 거의 같은 크기이다.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1976년 1월 8일에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공산성은 백제시대의 대표적인 성곽으로 백제의 수도가 공주였을 때 공주를 지키던 백제의 산성이다. 백제 성왕 16년(538)에 부여로 도읍을 옮길 때까지의 백제 도성이었으며, 이후 조선시대까지 지방 행정의 중심지였던 곳으로 역사적 가치가 큰 중요한 유적이다. 금강변 야산의 계곡을 둘러싼 포곡형(包谷形) 산성으로, 원래는 흙으로 쌓은 토성이었으나 조선시대에 석성(石城)으로 고쳤다. 쌓은 연대는 정확하지 않으며, 백제 때에는 웅진성으로, 고려시대에는 공주산성 또는 공산성으로, 조선시대 이괄의 난(1623)으로 인조가 피난한 이후 쌍수산성으로 불렀다. 백제 멸망 직후에 의자왕이 잠시 머물기도 하였으며, 백제부흥운동의 거점지이기도 하였다. 통일신라시대에는 김헌창의 난(822)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동서로 약 800m, 남북으로 400m 정도의 장방형을 이루고 있다. 4방에 문터가 확인되는데, 남문인 진남루와 북문인 공북루가 남아있다. 동문과 서문은 터만 남아있었는데, 993년에 동문터에는 영동루, 서문터에는 금서루를 복원하였다. 암문, 치성, 고대, 장대, 수구문 등의 방어시설이 남아 있으며, 성 안에는 쌍수정, 영은사, 연지, 임류각지, 만하루지 등이 있다. 또한 연꽃무늬 와당을 비롯하여 백제 기와, 토기 등의 유물들과 고려시대, 조선시대의 유물들이 많이 출토되었다.
성곽을 따라 걸으면 공주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백제문화제 기간에는 공산성 앞에서 금강신관공원까지 부교로 건널 수 있다. 금서루에서는 백제왕국의 위풍당당함을 ‘웅진성수문병근무교대식’으로 볼 수 있고, 금강신관공원에서는 밤풍경이 아름다운 공산성 감상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