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광역시 강화군 여행 코스 강화도의 애환이 서린 교동도를 밟다 · 일정 기타 · 거리 35.4km · 방문지 3곳 · 주요 장소 교동향교, 강화 무태돈대, 망양돈대

교동도의 역사는 꽤나 오래됐다. 고구려 때부터 신라를 거쳐 이웃의 강화도와 석모도의 간척 해안선을 가졌듯 오늘날의 교동도가 되었다.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지만 우리나라 처음으로 공자를 모신 향교여서 매해 유림들이 찾아 재를 지낸다고 한다. 교동읍성의 대룡시장을 가보는 것도 좋다. 무엇보다 해안선 경계를 위한 돈대들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하루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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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교는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지방 백성의 교육을 담당하기 위해서 국가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고려 인종 5년(1127)에 화개산 북쪽에 지었으나 조선 영조 17년(1741)에 조호신이 현재의 위치로 옮겼으며 1966년에 수리하였다. 고려 충렬왕 12년(1286)에 안향이 원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공자상을 들여와 모셨다고 전하며 이후 서울의 각 읍에 조상이나 성현의 위패를 모시는 문묘를 설치했다고 한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교육공간인 명륜당과 동재·서재가 있고, 제사공간을 형성하는 대성전과 동무·서무가 있다. 이외에도 내삼문·외삼문과 제기고 등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노비·책 등을 지급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1894) 이후 교육의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의 기능만 남아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에 있는 무태돈대는 조선시대의 돈대이다. 돈대는 해안가나 접경지역에 쌓은 소규모 관측, 방어시설이다. 강화도는 예부터 해안 방어를 위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1679년 당시 병조판서 김석주에게 강화도를 돌아보게 한 뒤에 48개의 돈대를 쌓게 했는데, 무태돈대도 이때 만들어졌다. 이 시기에 만들어진 인화돈대, 광암돈대, 귀등돈대, 작성돈대와 함께 무태돈대는 인화보의 관리 아래 감시소와 방어진지로서 역할을 했다. 직사각형 형태인 무태돈대는 해안을 향해 포좌 4문을 설치했으나 동쪽과 서쪽의 성벽은 비교적 잘 남아있으나 남쪽 성벽은 하부만 남아있어 최근 새로 상부를 쌓았다.
돈대는 해안가나 접경 지역에 쌓은 소규모 관측·방어시설이다. 병사들이 돈대 안에서 경계근무를 서며 외적의 척후 활동을 비롯한 각종 수상한 정황을 살피고 대처한다. 적이 침략할 때는 돈대 안에 비치된 무기로 방어전을 펼친다. 1679년(숙종 5) 5월에 완성된 48돈대에 이후 5개 돈대가 추가로 지어졌다. 48돈대는 황해도·강원도·함경도 승군 8,900명과 어영청 소속 어영군 4,262명이 80일 정도 걸려서 쌓았다. 돈대 축조를 기획하고 감독한 이는 병조판서 김석주였고 실무 총괄은 강화유수 윤이제였다. 망양돈대는 1679년(숙종 5)에 쌓은 48돈대 가운데 하나로 건평돈대·삼암돈대·석각돈대와 함께 정포보에 속했다. 방형 구조로 둘레가 130m, 석벽의 높이는 300~340㎝이다. 동쪽으로 외포리 항이 있고 바로 아래 삼별초항몽유허비가 있다. 남쪽은 급경사로 거의 절벽에 가깝다. (출처 : 국가유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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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근처에 머물면서 밤 카페 투어를 했어요. 도시 야경과 분위기가 완벽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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