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당샘공원은 서울시 도봉구 방학동에 위치한 공원으로 약 600년 전 파평 윤씨 일가가 정착한 원당마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곳의 주요 시설인 원당샘은 원당마을의 이름을 딴 것으로 수백 년 동안 생활용수로 공급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지하수를 연결하여 원당샘이 마르지 않고 흐를 수 있도록 전통 연못으로 복원하였다. 전통 연못 원당샘과 그 곁에 있는 정자 사모정이 어우러져 고즈넉한 산책코스가 된다. 복원 공사를 하며 심어진 13000여 그루의 나무들이 시원한 쉼터를 마련해 준다. 가을이면 원당샘공원 내 서울특별시 기념물로 지정된 800살이 넘은 아주 큰 은행나무에 단풍이 물들고 나무 주위로 데크길이 있어서 둘러보기 좋다.
연산군묘는 조선 10대 연산군(재위 1494∼1506)과 거창군부인 신씨(1476~1537)의 묘이다. 연산군은 9대 성종과 폐비 윤씨의 아들로 태어나 1494년 왕위에 올랐다. 즉위 초에는 성종 대의 평화로움이 그대로 이어졌다. 사치풍조를 잠재우기 위해 구체적인 금지 조항을 만들어 단속하였고, 종묘에 신주를 모시는 제도를 새롭게 정비하였으며 비융사를 설치하여 철갑옷과 무기를 만들어 생산하는 등 국방정책에도 힘을 썼다. 그러나 무오사화(戊午士禍, 성종실록 편찬 중 김일손 등 사림이 훈구파에게 화를 입은 사건으로 김종직의 『조의제문』이 원인이 되어 사림이 피해를 본 사건)와 갑자사화(甲子士禍, 생모 폐비윤씨의 사사사건을 이용하여 훈구 및 사림파들이 척신파에게 화를 입은 사건)로 많은 사람을 죽이고, 사화 이후 국정에 관심을 두지 않기 시작하여 사치와 향락으로 조정이 어지러워졌다. 결국 1506년 중종반정으로 폐위되어 강화도로 유배되었고 그 해에 세상을 떠났다. 거창군부인 신씨는 연산군이 왕위에 오르자 왕비가 되었으나, 1506년 중종반정으로 왕비에서 폐위되었다.
연산군묘는 하나의 곡장 안에 봉분을 나란히 배치한 쌍분의 형식으로 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서쪽)이 연산군, 오른쪽(동쪽)이 거창군부인의 묘이다. 연산군은 1506년(중종 1) 유배지인 강화 교동에서 세상을 떠나 그곳에 묘가 조성되었다가, 1512년(중종 7) 거창군부인이 중종에게 연산군묘 이장을 요청하여 양주 해촌(현 도봉구 방학동)인 지금의 자리로 묘를 옮겼다. 이후 1537년(중종 32) 거창군부인이 세상을 떠나자 연산군묘 옆에 묘가 조성되었다. 묘에는 문석인 2쌍, 망주석, 장명등, 상석, 향로석, 표석을 배치하였고 묘 근처에는 재실을 두었다.
우이동만남의광장은 북한산 아래에 위치한 계곡이 있는 산책 공원이다. 놀이터와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는 우이동만남의광장에는 가족이 함께 방문하기 좋은 둘레길과 인근에 계곡이 있다. 3·1 만세운동을 주도한 의암 손병희 선생이 천도교 지도자 양성을 위해 설치한 봉황각이 자리 잡고 있으며 한국전쟁에 참전한 강북구 출신 88인을 기리는 6·25 현충비도 건립되어 있다. 또한 강북구 북한산 왕관봉 부근의 근사한 모습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며 북한산 둘레길을 이용할 수도 있다. 입구에는 간단하게 차와 커피를 즐길 수 있는 카페가 조성되어 있다. 별도의 주차 공간이 없으며 수도권 지하철 북한산우이역 2번 출구에서 약 500m 떨어진 곳에 있다.
서울을 한 바퀴 휘감는 총연장 156.5㎞의 서울둘레길은 21개 코스로 서울의 역사, 문화, 자연 생태 등을 스토리로 엮어 국내외 탐방객들이 느끼고, 배우고, 체험할 수 있도록 조성한 도보길이다. 둘레길 곳곳에 휴게시설과 북카페, 쉼터를 만들어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휴식을 취할 수 있게 했고, 전통 깊은 사찰과 유적지를 연결해 서울의 역사와 문화, 자연 생태를 곳곳에서 체험할 수 있도록 조성했다. 21코스인 북한산 도봉코스는 ‘깊은 역사의 울림이 있는 길’이라는 테마를 가진 만큼 역사문화유적지가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어 볼거리가 많다. 지하철 북한산우이역 도봉산역과 인접해 있다. 총 7.3㎞이며, 약 3시간 25분이 소요된다.
간송옛집은 우리 문화재 수호에 큰 공을 세운 간송의 자취가 남아 있는 100여 년 역사의 전통한옥으로 간송 전형필(1906~1962)의 묘소와 어우러져 자리하고 있다. 옛집은 19세기 말 그의 양부 전명기(1870~1919)가 인근에 자리한 농장 및 경기 북부, 황해도에서 오는 소출 관리를 목적으로 지은 것으로, 부친의 사망 이후 한옥 부근에 묘소를 꾸미고 제사나 차례를 지낼 때 필요한 제구를 보관하며, 일기가 좋지 않으면 본 한옥의 대청마루에서 제사를 지내는 등 재실로도 사용되었다. 간송은 양주군의 농장을 방문할 때나 부친의 제사를 모실 때 자주 이곳에 들러 생활하였다. 한국전쟁 당시 대문과 담장 일부 및 건물이 피해를 입었고, 전쟁 이후 종로구 본가 및 보화각의 피해 복구로 이곳의 수리가 지연되다가 1962년 간송이 세상을 떠나고 종로의 본가가 철거되면서 나온 자재를 활용하여 부분적 수리가 이루어졌다.
우이동계곡은 강북을 대표하는 계곡으로 도봉산과 북한산 사이에 있다. 북한산에서 우이동을 흐르는 아홉 구비 계곡을 [우이구곡]이라 부른다. 1762년부터 이곳에서 살았던 이계 홍양호가 붙인 이름으로, 홍양호은 우이동계곡을 돌아보며 아홉 곳에 이름을 붙이고 [우이동구곡기]를 지을 만큼 이곳을 사랑했다. 우이동구곡기는 서울의 유일한 구곡문학으로 남아 있다. 계곡 주변으로 계단과 산책로 등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어 편리하며, 녹음 속에서 산책을 즐기거나 계곡에서 즐기는 물놀이는 여름의 찌는 더위를 잊게 해준다. 또한, 계곡의 맑고 시원한 냇물을 끼고 있는 음식점 등을 이용할 수 있으며 특히 여름철 닭죽은 진미이다. 민박도 가능하며 3, 4월에는 대학생들의 MT 장소로 선호된다. 우이동계곡을 따라 20분가량 올라가면 원불교 수도원, 성불사, 용덕사, 선운사, 광명사 등 사찰을 찾을 수 있으며 입구에서의 들뜬 분위기는 이내 차분해지며 또 다른 운치를 느낄 수 있다. 서울 도심과도 가깝고 대중교통으로 접근도 용이해서 서울의 시민들이 휴식과 힐링을 위해 부담 없이 찾아오기 좋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