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 죽림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 동화사 소속 사찰이다. 죽림사는 610년(신라 진평왕 32)에 법정 대사가 화남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였다. 법정 대사는 창건 후 선덕 여왕의 명을 받아 화친사로 일본에 건너가 많은 성과를 거두고 돌아왔다. 왕은 노고에 대한 답례로 왕명으로 화남사 옆의 땅 약 900여 결을 하사하였는데, 그때 심은 대나무가 무성하게 자라 죽림사라는 이름의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고려 시대에 와서는 보조 국사 지눌이 중창하였다. 조선 시기에는 태조 때 무학대사가 중건하였다고 전한다. 그 뒤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적의 병화로 대웅전과 명부전이 소실되고 보광전만 남은 것을 전쟁 후에 인덕당을 새로 건립하였다. 최근에는 1992년 산령각과 요사인 견을당, 1993년에는 대웅전을 새로 지었다.
청도 남산계곡은 남산의 북쪽 사면에서 발원하는 소하천이 만들어낸 계곡이다. 기암절벽과 소를 이루면서 맑은 물이 흐르는 아담한 규모의 계곡으로 한여름 더위를 식힐 수 있는 피서지로 각광받는 곳이다. 계곡 초입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가 있는 청도 석빙고가 있고 이 외에도 청도읍성과 청도향교, 도주관 등 문화 유적을 탐방할 수 있다. 또한 계곡을 따라 걸으며 고을 선비들이 모여 시를 짓고 자연 속에서 풍류를 읊었던 장소인 취암, 운금천 등의 많은 바위를 만나볼 수 있다.
경상북도 청도의 명소인 낙대폭포[落臺瀑布, 약수폭포]가 있는 남산[南山] 중턱에 위치한 청도한옥학교[淸道韓屋學敎]는 목수[木手: 나무를 다루어 집을 짓거나 가구, 기구 따위를 만드는 사람] 양성 교육장이다.한국 고유의 전통미를 뽐내는 한옥을 내 손으로 직접 짓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학교로 인기를 끌고 있다. 한옥학교에 들어서면 마당 옆 청도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터에 큰 너와집(지붕을 붉은 소나무 조각으로 덮은 집)은 한국 전통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인상적이다.한옥학교의 과정은 목수 양성과정, 전문가 과정, 스스로 집짓기 과정과 더불어 한옥 창살 만들기, 대패질, 목재 자르기 등의 실습체험 및 고구마 구워먹기, 떡메치기, 한국 전통가옥에 대한 토론 등 어린이들을 위한 즐거운 한옥문화체험교실도 마련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목수양성과정에 집중하고 있다.
청도향교는 조선 전기에 창건된 교육 시설로 화양향교라고도 불린다.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설립된 고려와 조선시대의 국립 교육기관이다. 1568년에 군수 이선경이 고평동에 세웠다가 1626년에 합천동으로 옮겼으며, 1734년에 화양읍 교촌리로 다시 이전하였다. 1843년 군수 송계백, 1929년 군수 최병철이 각각 대성전을 중수하였고 1978년 군수 최형수가 명륜당을 보수하였다.
경내는 대성전과 동무, 서무, 내삼문, 명륜당, 동재, 서재, 사락루 등 8동의 건물이 있다. 일반적으로 제사 기능을 담당하는 대성전과 강학 기능의 명륜당을 앞뒤로 나란히 배치하였는데, 이곳은 두 건물이 좌우에 배치된 것이 특징이다.
향교 체험 프로그램으로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충효 교실이 있다. 청소년에게 서예와 한문을 가르치며, 서예반의 경우 오랫동안 배우고 익혀왔던 서예술과 작품을 모아 서예전을 개최했다. 이 외에도 백일장 개최와 청도향교지 발행 등을 통해 전통문화에 대한 이해와 계승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청도 석빙고는 조선 시대의 얼음 저장 창고로 얼음을 저장하기 위해 땅을 파고 만들었다. 청도 석빙고는 1713년에 건립되어 현재 남아 있는 석빙고 중에서는 가장 먼저 축조된 것이다. 석빙고가 설치된 연대는 입구 좌측에 있는 석비의 내용으로 확인할 수 있다. 석비 앞면에는 축조에 참여한 인원수, 비용, 소요 재료 등이 기록되었고 뒷면에는 비를 세운 연월일과 관계인의 이름을 열거하였다. 내부의 길이는 14.75m, 폭은 5m이고 높이는 4.4m이다. 동서로 긴 형태로 축조되었으며 입구는 서쪽에 설치되어 계단을 따라 내부로 들어가면 바닥이 약간 경사져 있다. 양쪽 벽을 이어주던 반원아치 형태의 홍예가 4군데 남아있을 뿐 천장은 완전히 무너져 불완전한 상태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남아있는 우리나라 석빙고 가운데 경주 석빙고 다음으로 큰 규모이다.
청도 범곡리 지석묘군은 청동기 시대 무덤 떼이다. 청도군 화양읍 범곡리에 있는 지석묘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고인돌이라고도 부르며 주로 경제력이 있거나 정치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세 군데로 나누어져 있는 고인돌 떼는 솔밭과 경작지 등에 남아 있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4개의 받침돌을 세워 돌방을 만들고 그 위에 거대하고 평평한 덮개돌을 올려놓은 탁자식과, 땅속에 돌방을 만들고 작은 받침돌을 세운 뒤 그 위에 덮개돌을 올린 바둑판식으로 구분되나, 이곳 범곡리에 있는 바둑판식 고인돌로 받침돌이 없는 개석식 고인돌이 무리를 이루어 청도천 주변에 50m 정도의 간격을 두고 동쪽에 22기, 서쪽에 12기가 밀집 분포하고 있다.
이는 청동기시대에 청도천 주변에 정착해 큰 마을을 이루고 생활하던 사람들의 묘로 보이며 기수가 많은 것으로 보아 큰 마을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주변의 농경지와 묘지 조성 등으로 일부 손상된 것으로 짐작되지만 비교적 잘 관리되고 있는 고인돌 떼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