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시 현수교 옆 한적한 길가 1,500평 땅에 산딸기를 가꾸는 소담산딸기는 딸기가 무르익는 6월 한 달 동안만 농장을 오픈하여 산딸기 따는 체험 프로그램을 여는 체험농장이다. 농약을 치지 않고 재배하기 때문에 아이들과 함께 안심하고 체험을 즐길 수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영롱한 루비 같은 산딸기가 판매대에 놓여 있고, 한 가족당 한 이랑에서 산딸기를 딸 수 있게 가꾼 농장이 나온다. 체험을 진행하는 동안 과일을 따면서 맛을 볼 수 있고 딴 것을 가져갈 수 있게 포장 용기를 제공한다. 도시생활을 하는 아이들에게 즐겁고 맛있는 색다른 경험을 주는 최고의 놀이터이자 배움터인 주말농장이다. 근처 차량 10분 거리에 안성맞춤랜드와 금광호수공원이 있어 가족과 나들이하기에 좋다.
옛 안성 읍내가 내려다보이는 도기동 입구 언덕 위에 세워진 화강암제 삼층석탑이다. 단층 기단과 3층의 탑신으로 구성되어 있다.
도기동삼층석탑은 단층 기단과 기단 중석이 있고 그 위에 평면 방형의 3층 탑신을 올린 높이 5.4m의 일반형 석탑이다. 여러 개의 장대석(長臺石)으로 조립된 지대석 위에 양 우주(隅柱)만이 모각된 기단을 놓았다. 갑석(甲石)은 1매의 판석으로 조성되었는데, 하면에는 각형 1단의 부연(副椽)이 마련되어 있다. 탑신부(塔身部) 중 1층 탑신석만 여러 장의 석재를 사용하였을 뿐 나머지는 모두 하나의 석재로 구성되어 있다.
도기동 삼층석탑 기단은 지대석 위에 결구된 기단 위로 올려진 탑신을 고려했을 때, 이중 기단으로도 볼 수 있다. 초층 옥개석(屋蓋石; 석탑이나 석등 따위의 위에 지붕처럼 덮은 돌)으로 보고 있는 석재는 2층 이상 옥개석과 달리 평박하고, 전각부 반전이 표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옥개석은 편평한 석재를 놓아 다른 석탑에서와 같은 조형미를 찾을 수 없는데, 2층 옥개석에는 1단의 옥개층급과 물 끊기 홈이 표현되어 있다. 3층 탑신도 다른 층의 석재와 달리 2매 석으로 구성된 점이 특징이다.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아 고려 시대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서로 다른 2개 이상의 석탑 부재를 섞어 건립했을 가능성도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안성낙원역사공원에는 모두 46기의 공덕비 선정비, 문인석, 송덕비가 있고, 소설가 이봉구님의 문학비가 있다. 고려시대의 삼층석탑, 흩어져 있던 좌대 불상 광배들을 모아 만든 석불좌상, 석남사에서 출토되었다는 광배와 좌대 등이 남아 있어 많은 볼거리와 이야기거리를 전해준다. 그 중 특히 유념해서 볼 것이 오명항선생(1673-1728) 토적송공비라 할 것인데 이는 원래 동본동에 있던 것으로 1969년에 이곳으로 이전 복원하였는데 선생은 영조 4년(1728)에 이인좌의 난을 평정한 사로 도순무사로 분무1등공신이 되었으며 송공비는 이를 기리기 위하여 1744년(영조20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소설가 이봉구님은 안성출신으로 일제하에서는 농촌계몽운동을 펼치기도 하였으며 작품으로는 실명소설, 등이 있으며, 안성을 무대로 한 이 있다.
(출처 : 안성시 문화관광 홈페이지)
아양동 석불입상은 보살입상 옆에 위치한 미륵불로, 화강암 1석으로 조각하였으며, 수법이 고졸하고 토속화 경향을 지닌 석불로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전체적인 규모는 보살입상보다 작으며, 인상은 위엄이 깃들어 있다. 머리 부위에는 관모처럼 두정에 표식이 있고, 눈과 코, 입이 가지런하며, 귀는 짧고 목에는 3도의 표현이 없이 의문으로 보이는 넓은 띠가 있다. 법의는 통견으로 양팔에 걸쳤는데, 좌우의 늘어진 소맷자락에는 각각 3개의 의문의 뚜렷하게 나타나 있다. 무릎 부위 하단부부터 매몰되어있다.
안성성당은 1901년에 프랑스 신부 꽁베르에 의해 처음 건립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보개면 신안리에 있었던 동안강당의 목재와 기와의 일부를 활용하여 1922년에 재건된 것이다. 평면의 긴 십자가형으로 날개채가 크게 돌출되지 않아 전체적으로는 정방향에 가깝다. 입구는 서쪽에 위치하며, 중앙에는 회중석이 있고, 동쪽 끝에는 제단이 있어 서양식 성당의 공간구조와 유사하다. 회중석은 좌우에 고주가 열지어 서 있는 신랑과 그 옆의 측랑으로 구성되었다. 측랑 상층의 회랑에는 난간이 설치되어 있으며, 측면에는 채광을 위한 고창이 나 있다. 제단은 회중석과 분리되어 있지 않으며, 내부 천장도 모두 평반자 형식이다. 구조는 목조기둥과 보가 짜맞추어져 골조를 이루고 그 사이에는 회벽으로 마감되었으며, 창문 아랫부분에는 화방멱이 설치되어 있다. 지붕에는 서까래가 걸리고 한식기와가 올려졌는데, 처마가 비교적 짧다. 1955년에는 전면 입구와 종탑이 로마 네스크 풍으로 개축되었다. 이 성당은 서양 카톨릭 성당의 형식을 따랐지만 재료와 결구에 있어서 전통적인 방식이 적용된 절충식 건물로서 성당 건축사 연구에 있어서 귀중한 자료이다.
안성향교는 1532년 창건된 된 향교로, 1932년과 1986년, 1988년 총 3차례 중수하였다.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설립된 고려·조선시대의 국립 교육기관이다. 안성향교는 대성전, 명륜당, 풍화루, 삼문 등이 현존하고 있다. 대성전은 문묘를 배향한 곳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명륜당은 일종의 교실이며, 풍화루는 일종의 강당으로 전국에 안성과 남원밖에 없으며 규모는 정면 11칸, 측면 1칸으로 이루어져 있다. 안성향교의 풍화로는 조선시대 향교 문루(아래에는 출입을 하는 문을 내고, 위에는 누를 지어 사방을 두루 살피는 기능을 가진 건물)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며, 경사지라는 입지여건의 특징을 잘 살려 외부에서 향교 내부가 들여다보이지 않도록 향교 전면을 효과적으로 가릴 수 있는 적절한 높이와 규모를 가진 건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