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달사는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에 있는 재단법인 선학원 소속의 사찰이다. 수원시의 최대 번화가인 팔달문 주변에 있어 하루에도 수만 명의 사람들이 오간다. 도심의 중심은 언제나 어수선하고 시끄러우나 도심 한 가운데에서 팔달사 일주문을 들어서는 순간 이러한 번잡함이 모두 사라지며, 아늑한 사찰을 마주하게 된다. 팔달사는 금강산 유점사의 비구니 윤홍법당 스님이 도심에 불교를 포교하기 위해 이곳에 최초로 사찰을 건립했다고 전한다. 처음에는 조그마한 대지에 있는 작은 사찰이었으나, 현 주지인 범행스님이 부임한 이후 사찰의 정문인 일주문이 건립되었고, 위쪽 대지에 있는 대웅전도 이 시기에 건립되어 현재와 같은 커다란 사찰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1986년에는 범종이 건립되었는데, 범종각 역시 같은 시기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산신각에 모셔져 있는 석가모니후불탱화는 1989년에 조성되었다고 화기에 기록하고 있어 이 당시에 새로운 불사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게 해주며, 조사당의 영정도 제작되어 이 당시에 조사당의 건립이 있었음을 알게 해준다. 팔달사는 정조 때 만들어진 화성과 그 주요 건물들이 건립된 팔달산 자락에 자리를 잡고 있어 화성 문화재들과 어우러져 수원시 중심의 풍광을 한껏 고풍스럽게 만들고 있다.
팔달공원은 수원화성 성곽을 허리에 두르고 있는 공원으로, 해발 128m이다. 수원의 주산인 팔달산과 화성을 내포하고 있고, 팔달산 회주도로변 벚꽃길과 생활체육시설이 다양하게 있어 시민 체력 증진에 기여 하고 있다. 산책로와 화성을 찾는 관광객 및 인근 주민들의 쉼터로 매우 좋은 곳이며 장안공원 및 화서공원이 인접하여 있어 함께 이용할 수 있다.
전경이 아름답고 산책길이 잘 조성되어 있어 가족 산책 나들이 또는 애견인들이 강아지 산책을 많이 하는 곳이다. 공원 곳곳 아름다운 전경들로 가득하여 사진촬영장소로도 유명하고, 커플들의 데이트 코스로도 안성맞춤인 곳이다. 날이 좋은 날에는 돗자리 피고 앉아서 피크닉도 가능하다.
八達門(パルダルムン)は華城の南門で宝物に指定された門です。門の前は甕城が丸く囲んでおり、城門右側のレンガには城門を築造した関係者の名前と人数が彫ってあります。他の城門とは異なり、城とはつながっていませんが、これは周囲に商店が立ち並んでおり、周辺の復元が出来なかったためです。
수원화성은 조선왕조 제22대 정조대왕이 세자에 책봉되었으나 당쟁에 휘말려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뒤주 속에서 생을 마감한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침을 양주 배봉산에서 조선 최대의 명당인 수원 화산으로 천봉하고 화산 부근에 있던 읍치를 수원 팔달산 아래 지금의 위치로 옮기면서 축성되었다. 수원화성은 정조의 효심이 축성의 근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당쟁에 의한 당파정치 근절과 강력한 왕도정치의 실현을 위한 원대한 정치적 포부가 담긴 정치구상의 중심지로 지어진 것이며 수도 남쪽의 국방요새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수원화성 관광특구는 2016년 2월에 지정되었으며 수원화성 일대 1.83k㎡의 지역을 말한다. 수원화성 성곽을 중심으로 장안구 팔달산~장안공원~연무대~팔달문 시장 일대이며, 장안문, 팔달문, 창룡문, 화서문, 서북공심돈, 동북각루와 방화수류정, 북수문, 화홍문, 동남각루, 동삼치, 동이포루 등의 시설이 포함된다.
水原華城(スウォンファソン)は、朝鮮王朝第22代正祖大王が父の思悼世子の陵墓を水原の花山(ファサン)へ移転するのに伴って築かれました。高い歴史的・文化的価値を認められ、1997年にユネスコ世界遺産に指定されました。また2016年には八達山・長安公園・錬武台・八達門市場などを含む水原華城一帯が観光特区に指定され、多くの観光客が訪れる水原の代表的な観光地となっています。
八達山の頂上には孝園(ヒョウォン)の鐘があります。孝園の鐘は正祖の孝行の心を讃えるため、1991年11月に水原市が設けたもので、直径 2.15メートル、高さ 3.54メートル、重さ約12.5トンです。鐘には市のシンボルであるイチョウの木、クロフネツツジ、鳩や、華虹門をはじめとした水原華城の重要文化遺産がきざまれています。この鐘は有料で3回鐘を撞くことができ、1回目は親の恩恵に感謝し、2回目は家族の健康と幸せを願って、最後の3回目は自身の発展を願って撞きます。
西将台(ソジャンデ)は八達山の頂上に位置した軍事指揮所です。華城には将台が2ヶ所あり、東将台(トンジャンデ)は普段、軍士たちが訓練する場所として使い、西将台は軍事訓練指揮所として使いました。正祖は西将台で城操(軍事訓練)を行い、1795年の行事の様子が描かれた絵が残っています。西将台の上階軒下に掲げられた「華城将台」と詩文の扁額は、いずれも正祖の作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