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国寺(トングクサ)は1909年から群山(クンサン)で布教を始めた曹洞宗の日本人僧侶・内田仏観(善応仏観)が1913年に建立した寺です。
日本強占期(1910~45年)の間、日本人の住職によって寺は守られてきましたが、1945年8月15日解放を迎え、大韓民国の懐へ戻ってきたという苦難の歴史を持つ寺です。
東国寺は韓国に残された唯一の日本式の寺で、大雄殿と寮舎の建物が渡り廊下でつながっているのが特徴です。
原色鮮やかな丹青(タンチョン)で彩られた韓国の寺院とは異なり、装飾がない軒や大雄殿の側面には多くの戸があり、日本的な雰囲気を醸し出しています。
東国寺は曹渓宗第24教区・高敞(コチャン)禅雲寺(ソヌンサ)の末寺に当たります。
東国寺の大雄殿は2003年7月、国家登録文化遺産に指定されました。
東国寺の元々の名称は錦江禅寺(錦江寺)と言われていました。この錦江禅寺は1909年、内田仏観という日本人僧侶が群山に布教所を開設し創建した曹洞宗の寺でした。
日本の仏教は1877年、釜山(プサン)の開港とともに、日本政府の要請により流入してきました。
一番最初に浄土真宗大谷派が布教を開始し、1904年群山にも布教所を開設し、日蓮宗が続きました。
日本の仏教が韓国に進出した理由ですが、純粋な仏教布教が目的ではなく、韓国を日本に同化させようとした日本政府の意向をそのまま反映したものと言われています。
その後、朝鮮総督府は日本の仏教を普及するため、1911年6月3日付で寺刹令も発布しています。
寺刹令を契機に、日本の仏教界は全土に別院・出張所・布教所などを設立しました。
錦江禅寺が建立される前、群山には本願寺、群山寺、安国寺がすでにありました。錦江禅寺を創建した内田仏観は布教を始めた1909年当時、すでに77歳の高齢で、群山地域を布教活動している途中、群山の一条通りにあった家屋を借り、布教所を開設しました。1913年7月に現在の場所に移り、現在の東国寺の建物を新たに建立しました。
동국사(東國寺)는 1909년 일본 승려 선응불관 스님에 의해 창건되어, 일제강점기 36년 동안 일본인 승려들에 의해 운영되다가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이하며 대한민국의 품으로 돌아온 뼈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사찰이다. 그리하여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 시대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우리나라에 남겨진 유일한 일본식 사찰로, 대웅전과 요사채가 실내 복도로 이어진 것이 특징이다. 화려한 단청이 있는 우리나라 사찰과는 달리, 아무런 장식이 없는 처마와 대웅전 외벽의 많은 창문이 일본식 사찰의 특징을 나타낸다.조계종 제24교구인 고창 선운사의 말사로, 동국사의 대웅전은 2003년 7월 국가지정 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동국사의 본래 이름은 금강선사였다. 금강선사는 1909년 일본인 승려 내전불관이 군산에 포교소를 개설하면서 창건한 조동종 사찰이다.
일본 불교는 1877년 부산 개항과 함께 일본 정부의 요청에 의해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가장 먼저 정토진종 대곡파가 포교를 개시하였으며, 1904년 군산에도 포교소를 개설하였다. 이후 일연종이 뒤를 이었다. 결국 일본 불교가 우리나라에 진출한 까닭은 순수한 불교 포교가 목적이 아니라, 한국을 일본에 동화시키려는 일본 정부의 의지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 하겠다. 이후 조선총독부는 일본 불교를 포교하고자 1911년 6월 3일 자로 사찰령을 발령하였다. 이를 계기로 일본 불교는 전국에 별원, 출장소, 포교소 등을 건립하였다. 금강선사가 창건되기 전, 군산에는 본원사, 군산사, 안국사가 자리하고 있었다. 금강사를 창건한 내전불관은 1909년 당시 77세의 고령으로 군산 지역을 순회하던 중, 군산 일조통에 있던 집을 빌려 포교소를 개설하였다. 1913년 7월 현재의 자리로 옮겨 지금의 동국사를 신축하였다
군산의 부윤(시장)이 생활하던 곳으로 당시 돈방석에 앉으려면 군산 부윤을 해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군산 부윤은 선망의 자리였다고 한다. 군산시 월명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상 2층에 대지면적 1,023㎡, 건축면적 200.3㎡ 넓이의 중간 규모 정도의 1930년대 건축한 일본 고 민가 형태의 민간주택용도 근대건축물이다. 정원에는 석등 등이 있어 일식 정원의 형태를 볼 수 있고 내부에는 목조 계단을 통하여 2층의 방들과 연결되어 있으며 방에는 오시이레와 도코노마가 설치되어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부윤 관사, 해방 후에는 1990년대 초까지 시장 관사로 사용되어 왔다. 1970년~1980년대까지만 해도 군산에는 시청을 비롯한 군청, 법원, 경찰서, 형무소, 세무서, 초등학교에 이르기까지 일제강점기에 지은 관공서 관사가 많이 남아 있었다. 관사는 오랜 기간 사용되지 않고 방치되었다가 1996년 개·보수를 거쳐 한때 일반음식점으로 사용돼 오던 중 지난 2014년 말쯤에 음식점이 이전하면서 방치돼 있다.
군산시 우체통거리는 2016년 도시재생사업으로 추진된 주민공모사업에 우체국 주변 주민들로 구성된 도란도란 공동체가 참여하면서 주민들이 직접 폐 우체통을 손질하고 그림을 그려 상가 앞에 설치하면서 조성되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주민들은 2017년 군산 우체통거리 경관협정운영회를 결성해 경관협정을 체결했고,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노력으로 2018 제1회 손 편지 축제를 개최하며 평범했던 거리는 우체통거리라는 도로명까지 얻으며 활기를 되찾았다. 또한, 우리 동네 살리기의 모범 사례로 자리매김했다. 우체통거리에는 캐릭터 우체통과 특색 있는 경관조명, 아트월 등 조형물이 조성되어 있어 거리를 찾은 시민들과 관광객들에게 즐거운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버려진 폐 우체통을 활용하지는 작은 아이디어를 시작으로 우체통거리를 만들고 손 편지 축제까지 여는 관광명소 마을이 된 것이다.
신흥동은 1930~40년대 무렵부터 일본인들이 집을 짓고 살게 되면서 주거지가 형성되기 시작했고 6·25전쟁 시기 피란민이 지금의 해망동, 신흥동 등지에 터를 잡고 살게 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이때 바위 위에 판자집을 다닥다닥 대어 집을 지었고 세월이 흘러 이곳은 초가지붕 가득한 동네가 되었는데, 산비탈을 의미하는 전라도 방언인 ‘말랭이’에 마을을 형성하였다 하여 사람들이 말랭이마을이라 부르게 되었다.
현재는 인구 유출로 인한 원도심화가 진행되고 있으나 2014년 전라북도 대표 관광지 육성사업으로 예술인 레지던스 9동과 전시관 8동이 조성되어 50여 세대의 주민과 7팀의 예술가들이 오순도순 함께 사는 마을이다. 마을 곳곳에는 벽화와 포토존, 소리 공간, 김수미 배우 집, 말랭이마을 추억 전시관, 양조장이 있다. 또한,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에는 동네 골목 잔치가 열린다.
전시관을 지나 비탈진 골목길을 따라 월명산에 오르면 금강하구가 서해와 만나는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곳으로 해 질 녘 노을과 야간경관 명소이기도 하다.
群山市新興洞は1930~40年代頃から日本人が家を建てて暮らすようになり、住居地が形成され始め、韓国戦争時には避難民が今の海望洞、新興洞などに定着して暮らすようになって村が形成されました。山の斜面を意味する全羅道の方言「マルレンイ」に村が形成されたことからマルレンイ村と呼ばれるようになりました。人口流出により旧都心化が進みましたが、2014年に全羅北道の代表観光地育成事業として芸術家レジデンス9棟と展示館8棟がつくられ、現在は約50世帯の住民と7組の芸術家たちが暮らしています。村の各所に壁画やフォトコーナーがある他、ソリ(音)空間、キム・スミ俳優の家、マルレンイ村の思い出展示館、醸造所があります。